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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내가 귀향을 확인하는 어림대도 그저 단순한 전 덧글 0 | 조회 80 | 2019-06-15 17:15:49
김현도  
그리하여 내가 귀향을 확인하는 어림대도 그저 단순한 전설의 바위가 아니라, 침몰하는 우리들 옛 고향의 양수표나 아닐는지.“개구립니다”나는 한동안 내가 읽은 모든 법조항을 동원해 보았다. 그러나 분명 어떤 범법의 냄새가 나는데도, 기껏 내가 혐의를 걸 수 있는 것은 정부보조가 육십프로가 들어 있는 물건을 함부로 처분한 농민들쪽일 뿐이었다. 주먹구구식 영농정책과 농민들의 인식 부족을 교묘하게 이용한 폭리였다.나중에 알았지만 그 날은 또래들 중에서 가장 늦게까지 결혼 않고 남아 있던 그가 백모의 성화에 못 이겨 정혼한 날이었다.그러나 선임하사는 눈도 깜짝 안했다.그는 어렸을 적에 나와 같은 숲에서 자란 친구로 그때는 시원찮은 녀석이었다. 우리가 다가올 성년을 위해 열심히 활과 창을 익히고 있을 때, 녀석은 한갓진 곳에 처박혀 멍청한 공상에나 잠겨 있었다. 어쩌다 우리들끼리의 작은 사냥에 끼일 때가 있어도 기껏 녀석이 하는 일이란 애써 몰아논 산토끼에게 길이나 틔워주고 우리의 화살에 떨어진 비들기의 깃에 눈물이나 떨구는 것이었다.“소위 사회적 긴급피난을 말하시는 겁니까?”고죽은 한폭한폭 자평을 해 나갔다. 오랜 원수의 작품을 대하듯 준엄하고 냉정한 평이었다. 글씨에 있어서는 법체를 본받은 경우에는 그 임모나 집자의 부실함을 지적하여, 그리고 자기류의 경우에는 그 교졸과 천격을 탓하면서 모두 왼편으로 제쳐놓았다. 그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옛법의 엄격함에다 자신의 냉정한 눈까지 곁들이니, 또한 오른편으로 넘어갈 게 없었다.동몽선습을 떼었읍니다.그뒤 내가 그 마을을 떠난 것은 부임한 날로부터 3년이 조금 지났을 무렵이었다. 군에서 제대한 남편으로부터 지금의 직장에 취직이 되었다는 편지를 받고 나는 곧 그와의 결혼식을 위해 학교에 사표를 냈다. 그런데 워낙이 머릿수를 맞춰둔 교원이라 내가 그날로 떠나 버리면 그동안 맡아오던 학급은 후임자가 올 때까지 수업을 중단해야 할 형편이었다. 그 바람에 나는 사흘이나 더 기초언은 그런 고죽의 안색을 한동안 살피다가 말없이 화방을